세계는 나의 교구다

공동체 안에서 영적인 풍성함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무제-1

감리교회(The Korean Methodist Church)는 1884년

맥클레이(Robert S. Maclay) 선교사가

'학교와 병원 사업을 해도 좋다'는

고종의 허락은 받아, 1985년 4월 5일 부활절 새벽 제물포 항에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부부가,

5월 1일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 부부와

어머니 스크랜턴 대부인(Mary F. Scranton)이 입국하여

선교 사역을 시작 합니다.

선교 초기 아픈 이들을 돌보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였습니다.

제중원, 상동 병원, 최초의 여성 병원 보구 여관에서 아픈 이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였고,

배재 학당, 이화 학당 등 많은 학교를 세워,

이후 한국 근대 의료 복지 사업과 교육에 요람 역할을 하였습니다.

 

미국 남감리회 소속 캐나다인 선교사 하디(Robert Hardie) 선교사의 회개 운동을 통하여,

1903년 원산 대 부흥 운동의 시작으로 4년 후 평양 대 부흥 운동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일제 강점기 상동 교회를 중심으로 구국 민족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 났습니다.

이준, 주시경, 이회영, 이동녕, 김구, 이승만 등은

상동파(尙洞派)로 불리며, 민족 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며,

후에 감리교인들을 중심으로 신민회(新民會)가 조직되었습니다.

근대 개화파 지도자였던 윤치호를 비롯 3·1 운동 민족 대표 33명 중 9명이 감리교인이였고,

순국 열사 유관순, 상록수의 주인공 최용신, 한국 최초의 여성 박사 김활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등도 모두 대표적인 감리교인이었습니다.

 

이 처럼 감리교회는 개인의 영혼 구원과 사회를 구원코자하는 운동에 몸 담아 왔으며,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감리교회는 하나의 교단으로

나라와 민족의 발전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는 건전한 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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